한옥으로 담아내는 따뜻한 감성과 안온한 정서
김상철(동덕여대 교수)
작가 김도영의 작업은 한옥과 한글을 기본 요소로 한다. 작가는 이러한 화두를 오랜 기간 천착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옥과 한글은 모두 강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소재의 선택은 그의 작업이 소재주의적인 경향으로 흐를 염려가 다분한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자신의 내밀한 기억과 특유의 안온한 감성으로 수용해 냄으로써 이러한 우려를 말끔하게 해소시켜 주고 있다. 작가에게 있어서 한옥과 한글은 작업 전반을 지지하는 형식이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이를 통해 상기되는 삶의 기억에 대한 반추이다. 작가의 기억은 삶의 양태를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추억으로 환치된 내밀한 내용들을 은유적으로 제시하고 여백을 통해 상상케 함으로써 그 공감의 폭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실질은 그 속에서 이루어졌던 삶에 대한 동경이자 희구이며, 그 삶의 이야기들을 엮어 내었던 인물들에 대한 아련한 연민으로 읽혀진다. 작가의 작업이 한옥, 혹은 한글이라는 정형화된 가치를 넘어 안온한 정서와 따뜻한 감성의 극히 인간적인 화면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일 것이다.
사실 작가의 작업은 몇 차례 기억할만한 변화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초기 작가의 작업은 한옥 자체가 지니고 있는 기하학적인 구조에서 비롯되었다. 담장으로 구획되어진 한옥의 구조적 특징을 조형의 틀로 수용해 내었던 당시의 작업들은 한옥이 지니고 있는 전통적 가치와 그 구조에서 발견한 조형적 내용들을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한옥과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공간의 특성에 충실했던 당시의 작업들은 소재의 선택과 표현에 있어서는 참신한 것이었지만 공간의 운용과 주관적인 해석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경직된 양태를 지닌 것들이었다. 이에 작가는 한옥의 구조와 한글 자모와의 관계에 주목하여 작업을 일변시킴으로써 변화를 추구하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 한 부감의 시점을 차용하여 공간의 넓이와 깊이를 확보하고, 형상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통하여 자신만의 개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소재에 대한 해석이 더해짐으로써 한옥, 혹은 한글이라는 기성의 상징성과 정형화된 가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며, 나아가 주관적인 공간 운용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펼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한 것이라는 점에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거쳐 작가의 작업들은 마침내 보다 농밀한 자신만의 형식과 내용을 지닌 독특한 조형의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신작에 나타나는 공간의 운용은 물론 이를 통해 발현코자 하는 정서와 감성은 이제 한옥과 한글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치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소소하고 은밀하며 극히 사적인 기억들의 반추를 통해 낡고 오래된 것들의 너그럽고 따뜻한 감성과 그 속에서 이루어졌던 지나간 것들에 대한 연민을 표출해 내고 있다. 그것은 소재와 표현이라는 조형의 얼개 너머에 자리하는 작가의 사유이다. 이로써 작가의 작업은 새로운 지평을 마주하고 있다 할 것이다.
신작에 나타나고 있는 조형의 얼개는 이전 작업들에 비해 훨씬 개괄적으로 정리되어 여유로운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반드시 소재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해석을 통해 삶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개진하는 것이다. 비록 소소한 개인의 은밀한 기억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그가 드러내는 감성은 보편적인 인간적 가치이기에 쉽게 보는 이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과거 대가족 중심의 삶에 대한 회상과 자신의 유년 시절과 함께 하였던 인물들과 내밀한 사연들을 통해 한옥을 인문학적인 내용으로 재해석해내고 있다 할 것이다. 더불어 선비정신, 혹은 풍류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동양적 사유를 더함으로써 자신의 지향이 한옥, 혹은 한글이라는 기성의 가치와 제한된 의미에 함몰됨을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은 각색되고 순치되어 추억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것들이기에 아득한 시공의 간극을 지니고 있는 것이며, 서사적인 스토리를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