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마다 하나의 풍경
나의 작업의 근간은 한글과 한옥이다. 한글 자형을 한옥의 조형에 수용하여 한국화로 발표한 이후에 이를 전각(篆刻) 작업하여 24개의 자모음으로 ‘한옥한글’을 고유한 자형을 완성하였다. 현재는 한옥을 주제로 한 한국화와 한글을 주제로 한 문자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한옥을 주제로 한 한국화는 민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전통 그림 시점인 하늘에서 보는 시점(俯瞰法)과 땅에서 보는 시점(平遠법)을 동시에 사용하였다. 부감법을 이용하여 한옥의 기와지붕 형상이 두드러지게 하고, 평원법은 한옥 안에 펼쳐진 삶과 생의 흔적을 보는 이에게 추억의 자리로 내어주고 있다. 한지 위에 분채(powder colors)로 겹겹이 올린 채색기법 또한 밀도 있게 차분한 발색으로 한국적인 감성을 더해주려고 했다. 한옥은 자연 안에 있을 때 더불어 하나가 되기에, 마당을 걸을 때나 마루에 앉아 있을 때나 ‘한 걸음마다 하나의 풍경’을 제공한다. 나는 한옥의 형상을 재현하거나 풍경의 한 장면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한옥이 주는 정서에서 비롯한 나의 사유를 담았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이가 한옥과 대화하길 바라고 다시금 그들의 ‘마음 풍경’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한글을 주제로 한 문자 작업은 24개의 ‘한옥한글’이미지를 나무에 레이저 투각(透刻)하면서 시작되었는데, 노랫말, 시, 문구를 자모음 조합으로 배열하여 평면, 반 입체(浮彫), 설치 등으로 시각화하게 되었다. 오방색으로 채색한 한지 위에 투각한 한지 글자로 ‘아리랑’과 ‘훈민정음’을 콜라주 하기도 하며, 한글 자모음을 모빌제작하여 다양한 조명을 이용한 공간설치 작업으로도 이어갔다. ‘너와 나의 암호말’은 전시장 벽에 떠다니는 글자 그림자가 폰과 컴의 문자가 넘치는 시대에 형식적으로 나누는 의미 없는 문자와 같음을 공간에 형상화한 작업이다. 또한, 문자디자인 작업으로도 ‘한글한옥’은 다양하게 활용되어 타이포그래피 영역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한글은 자모음이 모여 무한한 소리를 만들어 내듯이 나에게 무한한 작업의 소재로 작동되고 있다. 앞으로도 한옥, 한글, 한지, 한국문학 등을 두루 포함한 작업으로 다소 천천히 가더라도 계속 나아가고 싶다.
이번 전시는 오랜 기간 전주시에서 운영해 온 ‘서학동사진관’이 ‘서학동사진미술관’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열고자 하는 첫 번째 전시에 초대이다. 한옥의 상징이 된 전주시 그리고 마침 나와 동갑인 한옥 전시장에서 발표할 수 있어 작가로서 감회가 새롭다. 그래서 한옥과 한글 작품이 한옥의 공간에서 서로 조화로운 빛이 되어주길 바라며, 먼 길 돌아와 다시 찾은 고향 집처럼 한옥 전시장에서 펼친 나의 작품들이 찾아오는 이들에게 많은 위안과 안식이 되길 바란다.
서학동사진미술관 초대전에 임하며
2022년 봄날 김도영